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경제학 - 오스트리아학파, (신)슘페터 학파
    카테고리 없음 2022. 5. 10. 14:10
    반응형

    1. 오스트리아학파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모두 자유 시장 경제학자는 아니다.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모두 신고전주의 경제학자인 것도 아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들은 대부분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보다 자유시장을 훨씬 더 열렬히 지지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카를 맹거에 의해 19세기말에 시작 되었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에 의해 영향력이 오스트리아 너머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중앙 계획 경제의 실현 가능성을 두고 마르크스 경제학자들과 벌인 이른바 '계산논쟁' 때문에 국제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1944년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을 통해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잃게 만드는 정부 개입의 위험성을 열정적으로 경고해 대중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오스트리아학파는 신고전주의 학파의 자유 시장 분파와 같은 자유방임적 진영에 속하며, 그들과 비슷하지만 좀 더 극단적인 정책을 추천하곤 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학파는 방법론 면에서는 정치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다.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달리 개인을 합리적 원자로 보지 않는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인간의 합리성은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적 규범을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자발적,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선택 범위를 제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이에크는 '관습과 전통은 본능과 이성 사아에 놓여 있다'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덕적 규범을 존중할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기당할 확률을 계산하기보다는 가능한 시장 거래의 비용과 이득을 계산하는 데 정신적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또 세상이 고도로 복잡하고 불확실하다고 주장한다. 이 학파의 추종자들이 계산 논쟁에서 지적한 대로, 아무도 심지어 누구에게 무슨 정보라도 요구할 수 있는 전능한 사회주의 국가의 중앙 계획 기구조차도 복잡한 경제 체제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모두 얻을 수는 없다. 오직 경쟁이 허용된 시장에서 일어나는 자생적 질서를 통해서만, 예측 불가능하고 복잡한 세상의 변화에 반응해 수많은 경제 주체가 만드는 다양하고 변화 무쌍한 계획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학파는 신고전주의에서 주장하듯 인간이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모든 것을 다 알아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고 본질적으로 '알래야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에 너무도 많기 때문에 주유 시장이 가장 좋은 경제 체제라고 주장한다.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이런 식의 변호는 인간이 엄청나게 합리적이라는 가정과 세상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믿음에 기초한 신고전주의의 변호 방식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2. (신)슘페터 학파

     조지프 슘페터는 경제학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딴 슘페터 학파 혹은 신슘페터 학파가 생긴 만큼 사상은 독창적이었다. 오스트리아학파와 마찬가지로 슘페터도 마르크스학파의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1942년 출간된 그의 걸작[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도 마르크스에 관한 내용이다. 유명한 케인즈학파 경제학자 조엔 로빈슨은 슘페터를 '형용사만 바꾼 마르크스'라고 일갈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슘페터는 기술 발달이 자본주의의 원동력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 마르크스의 이론을 더 발전시켜, 새로운 생산기술, 제품, 시장을 창조하는 기업가의 혁신을 통해 자본주의가 발달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에 성공한 기업가는 각자의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독점권을 누리면서 이례적인 이윤을 거두게 되는데, 이를 슘페터는 기업가 이윤이라고 불렀다. 시간이 흐르면 경쟁자들이 그 혁신을 모방해서 모두의 이윤을 '정상'수준으로 끌어내리게 된다. 한때 애플 아이패드가 독점했던 태블릿 컴퓨터 시장에 지금 얼마나 다양한 상품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슘페터는 기술 혁신을 동력으로 한 이러한 경쟁이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는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이용하되 효율서을 높여 가격을 낮추는 방법으로 생산자들이 경쟁한다고 설명한다. 반면 슘폐터는 가격을 통한 경쟁과 혁신을 통한 경쟁간의 효과 차이는 '문을 몸으로 밀쳐 여는 것과 폭격하는 것만큼이나 크다' 라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관해 슘페터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는 아무리 확고히 자리 잡은 기업이라도 장기적으로 '창조적 파괴의 돌풍'에서 안전한 곳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했다. 한때 분야를 주도했던 IBM이나 GM, 코닥과 같은 기업의 쇠락과 파산은 혁신을 통한 경쟁의 힘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의 역동성에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슘페토였지만, 자본주의의 미래에는 낚관적이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그는 기업의 규모와 기술혁신의 과학적 원칙을 응용하는 범위가 점점 커지면서, 자신이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경영자 타입'이라고 부른 전문 경영인들에게 기업가들이 자리를 내주고 있다고 관측했다. 기업 경영이 관료화되면서 자본주의는 역동성을 잃게 될 수밖에 없는데, 궁극적으로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기업가라고 부르는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들의 비전과 추진력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슘페터에 따르면, 이런 과정에서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예언한 것처럼 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시들어 사회주의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슘페터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그가 점쳤던 우울한 죽음을 맞는 대신 사실상 '더'역동적으로 변했다. 그가 어떻게 부정확한 예측을 한 것은 기업가 정신이 기업가뿐 아니라 기어 안과 밖의 수많은 주체가 참여하는 집단적 노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신과정에 참여하는 '다른 선수들'의 역할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기에 슘페터는 개인 기업가들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자본주의가 역동성을 잃고 시들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렀다. 슘페터의 지적 계승자들은 기업, 대학, 정부 등 혁신 과정에서 다양한 주체의 상호 작용을 분석하는 국가 혁신 시스템이라는 접근법을 통해 슘페터 이론의 한계를 극복했다. 그러나 슘페터 학파는 기술과 혁신에 너무 초점을 맞춰 노동, 금융, 거시경제 등의 다른 경제 문제를 상대적으로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공평하게 말하자면 특정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다른 학파들도 마찬가지이나, 슘페터 학파는 다른학파에 비해 특히 더 초점이 협소하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