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자본주의 여명
    카테고리 없음 2022. 5. 9. 13:00
    반응형

    1. 자본주의의 탄생

      자본주의는 서유럽, 특히 영국과 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가 자리한 '저지대 국가들'에서 16~17세기경에 탄생했다. 당시까지도 이들과 경제 발전 정도가 비슷했던 중국이나 인도가 아니라 굿이 서유럽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시작한 이유를 두고 오랫동안 치열한 논란이 있었다. 상업, 산업 등의 실용적인 활동을 멸시하는 중국 엘리트 계층의 태도 에서부터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영국의 석탄 매장 패턴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소가 그 원인으로 제시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문제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중용한 것은 자본주의가 서유럽에서 최초로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자본주의 이전 단계 사회가 그러하듯,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전 서유럽 사회는 변화 속도가 굉장히 느렸다. 수백년 동안 거의 비슷한 기술에 의존한 농업이 사회의 중심이었고, 상업과 수공업이 조금 존재했다.

     서기 1000년에서 1500년, 중세 서유럽의 1인당 소득은 1년에 0.12퍼센트씩 증가했다. 이 말은 서기 1500년에 살던 사람들은 서기 1000년에 살던 사람들보다 수입이 82퍼센트밖에 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연평균 성장률이 11퍼센트인 중국이 2002년에서 2008년까지 6년동안 경험한 성장 수준이라고 말하면 큰 그림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즉 물질적 발달 정도만 놓고 보면 현재 중국의 1년은 중세 서유럽의 83년과 맛먹는다고 할 수 있겠다.  

     앞에서 한 이아기 다음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아시아와 동유럽국가들에 비하면 서유럽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가히 일취월장이라과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지역은 그 속도가 3분의 1인 0.04퍼센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즉500년 사이에 수입이 22퍼센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뜻이다. 서유럽 국가들이 '거북이' 처럼 움직였다면 나머지 국가들은 '달팽이'처럼 움직였던 것이다.

    16세기에 자본주의 탄생했다. 그러나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숫자만 보고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1500~1820년 사이 서유럽의 1인당 소득 성장률은 여전히 0.14퍼센트에 지나지 않아서 거의 모든 면에서 1000~1500년 기간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18세기 말에 이르러 면방직과 제철 부문을 중심으로 성장이 가속화되는 것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 결과 1500년에서 1820년 사이에 영국과 네덜란드는 각각 0.27퍼센트, 0.28퍼센트의 1인당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낮니만 당시 서유럽 평균의 2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 이면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다.

     먼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좀 더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방향으로 문화가 변화하면서 현대 수학과 과학이 탄생하기에 적합한 토양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아랍 문화권과 아시아에서 개념들을 많이 빌려왔지만, 16~17세기에 접어들면서 서유럽 사람들도 자신들 나름의 혁신을 보태기 시작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페르마, 뉴턴, 라이프니츠등 현대 과학의 아버지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 이 같은 과학의 발전이 경제에 바로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지식이 체계화되면서 기술의 혁신을 개인에게 의존하던 경향이 줄어들고 이전도 쉬워져 새로운 기술 간의 융합이 촉진되어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18세기에는 방직과 제철, 화학을 비롯한 산업 분야에 기계화된 생산 체계를 가능하게 한 몇가지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다. 연속 조립라인은 19세기 초부터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를 이용해 에덤 스미스의 핀 공장에서처럼 분업이 좀 더 세밀하게 이루어졌다. 생산량을 늘려서 더 많이 판매하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겠다는 욕구가 이 새로운 생산 기술의 도입을 가속화시켰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분업 이론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생산량의 증가는 더 정교한 분업을 가능하게 했고 이것이 생선성의 증가를 이끌어 결과적을로 생산량이 증가했다. 생산량 증가와 생산성 증가 사이에 선순환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새 자본주의적 생산 현실에 맞춘 새로운 경제 제도도 도입되었다. 점점 널리 퍼지는 시장 거래를 더 쉽게 하기 위해 은행이 진화를 했고, 개인의 부로는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투자 프로젝트들이 나옴에 따라 법인 또는 유한 회사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면서 주식 시장도 탄생했다.

    2. 식민지 확장의 시작

     15세기초부터 서유럽 국가들은 세력을 바깥으로 급속하게 확장헸다. 이 과정은 '발견의 시대'라는 미사여구로 포장되었아나. 식민주의를 통해 다른 나라의 땅과 자원을 무단 점거하고 점령 지역 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에 불과했다.

    15세기 말 아시아에 진출한 포르투칼과 아메리카 대률에 진출한 스페인을 필두로 서유럽 국가들은 가차 없는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다. 이미18세기 중반에 북미 대륙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의 손에 들어갔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각각 1810년대와 1820년대까지 중남미대륙의 대부분을 점령했다. 인도는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이 나눠서 부분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호주 또한 이 시기에 정착민들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프리카 대부분이 식민지 지배에서 자유로웠지만, 포르투갈인들이 카보베르데, 상투메프린시페 섬 등의 무인도를 중심으로 해안 지역에 작은 식민지를 형성했고, 17세기에는 네덜란드인들이 케이프타운을 점령했다. 식민지들은 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해 운영되었다. 1858년까지도 인도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정부가 아닌 기업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이를 잘 상징하고 있다. 식민지들 덕분에 유럽에는 새로운 자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초기에는 화폐로 사용하기 위한 귀금속과 향신료를 찾고자 하는 것이 팽창의 동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로 아프리카에서 잡아 온 노예들을 이용한 플랜테이션들에서 재배한 사탕수수, 고무, 목화, 담배 같은 새로운 작물이 유럽에 들어왔다. 신대륙 작물 중 일부가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서 주식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영국 사람들이 감자 튀김을, 이탈리아 사람들이 토마토와 플랜타를, 인도, 태국, 한국 사람들이 고추를 먹지 않는 세상이 있었던 것이다. 16세기에서 18세기에 걸쳐 식민지에서 유입된 자원 없이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긴 논쟁은 아직도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화폐로 사용된 귀금속, 그리고 감자, 설탕 등 추가로 늘어난 식량과 면화들의 산업원료가 자본주의 발달의 연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식민 정복자들은 이 자원들로 인해 큰혜택을 받았지만, 아마도 식민지가 없었어도 자본주의를 발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로인해 식민지 사회가 입은 막대한 폐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식민지 주민들은 몰살 당하거나 극도로 배척 되었다. 땅은 물론 땅위, 땅 아래의 자원도 모두 빼앗겼다, 원주민들의 소외는 너무도 철저히 진행돼서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딘 1492년 이후 이지역에서 원주민이 국가수반으로 선출된 것은 2006년 입각한 현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가 두 번째이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