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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 시장과 정치
    카테고리 없음 2022. 5. 2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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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부 실패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지만, 크게 에누리해서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실패는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이고,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정부 실패 논리는 현실의 정부가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켜 줌으로써 경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돕는다. 사실 상당히 드문 약탈적 정부를 제외하고, 정부 실패론자들이 거론한 모든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실패론에서는 정부가 실패할 수 있는 범위를 과장한다. 잠깐만 생각해 봐도, 정부 실패론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상에 조금이라도 괞챦은 정부가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적일 수밖에 없는데, 실제로는 제대로 기능하는 정부가 상당히 많고 일을 굉장히 잘 해내는 정부도 많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뻔한 이야기지만 정부 실패론자들이 묘사하는 것만큼 정치인 관료, 이익 집단 모두가 이기적이는 않다는 점이다. 선거에서 선출될 가능성을 높이기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정치인의 예는 실제 세상에 수없이 많다. 이와 마찬가지로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기보다는 공공 서비스 정신으로 일하는 관료, 더 큰 공공의 이익을 위해 당파적 이익을 자제하는 이익 집단의 예도 산재해 있다. 이와 더불어 직책을 맡은 사람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제어하는 방법도, 공직 윤리 증진에서부터 뇌물과 기타 부패 관행에 대한 규칙까지 다양하다. 물론 정부 실패론자들이 지적하듯이 이런 규칙들은 피해 가거나 왜곡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가 많다. 그러나 이 규칙들이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전혀 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불완전할지는 모르지만, 현재 우리가 비교적 높은 공직 사회의 기준을 갖게 된 것은 많은 부분이 그런 규칙들 덕분이다.

    2. 탈정치화 제안은 반민주적이다.

     정부 실패의 가능성을 생각하면, 국가를 구석으로 밀어내고 중앙은행과 같이 꼭 필요한 기구에 정치적 독립성을 부여해 경제를 탈정치화하는 것이 좋은 생각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 영향력을 줄여야 한다고 하는 정치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민주 국가에서 정치란 국민이 끼치는 영향력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1원 1표 원칙으로 움직이는 반면 민주 정치는 1인 1표 원칙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민주 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 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3. 시장과 정치의 경계를 정하는 유일한 '과학적'인 방법은 없다.

     정부 실패론은 경제학, 즉 시장의 논리가 정치보다 우위에 있으며, 더 나아가 예술, 학문 등 인간 생활의 다른 측면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리는 요즘 들어 너무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서 사람들이 당연시하는 지경까지 왔다. 그러나 이는 심각하게 잘못된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시장의 논리가 우리 생활의 다른 측면까지 적용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빵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에 더해 이 주장은 어떤 것이 시장의 영역에 속하고, 어떤 것이 정치 영역에 속하는지를 결정하는 유일하고 올바른 과학적 방법이 있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예를 들어 정부 실패론자들은 최저 임금 법안이나 유치산업의 보호 관세 같은 정책은 정치적 논리로 신성불가침 한 시장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정책을 정당하다고 보는 경제학 이론들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정부 실패론을 지지하는 경제학자들은 사실상 다른 경제학 이론들에 정치적이라는 딱지를 붙여 더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고, 자신들의 경제학 이론이 맞는 이론이고 심지어 유일한 경제학이라고 암묵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4. 하얀 마녀, 그리고 더 심오한 마법 :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탈 정치화

     정부 실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경제학 이론이 맞다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경제와 정치 사이에 선명한 선을 긋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의 경제 자체가, 특정 경제학 이론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거래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우리는 무엇이 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고, 누가, 어떤 방식으로 거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정해야 한다. 이런 모든 규칙은 어느 면에선가는 제한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시장도 완전히 자유 시장일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기본 규칙은 경제학적 논리로 결정할 수 없다. 시장에서 무엇을 사고팔 수 있는지에 관한 과학적 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정은 정치적인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 시장 거래가 금지된 것들이 있다. 인간, 인간 장기, 아동 노동, 무기, 관직, 의료 서비스, 의사 자격증, 인간 혈액, 교육 자격증 등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에도 시장에서 사고팔면 안 되는 경제적 이유는 없다. 사실 이 모두가 어떤 시대 어떤 장소에서는 합법적인 시장 거래의 대상이었던 적이 있다. 다른 극단에는 이전에는 시장 거래 대상이 아니었으나 시장 거래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특허권, 저작권, 상표권을 보호하는 법을 도입하기 전에는 아이디어, 즉 지적재산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오염시킬 권리, 개념적인 경제 변수에 대한 투기 등이 시장에서 거래되지만 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들이다. 정치는 어떤 거래도 시작되기 전에 시장을 만들고, 그 모양과 범위를 정하고, 수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시간의 여명이 트기 전부터 존재했던 '더 심오한 마법'과 같다. C.S 루이스의 [사자와 마녀와 옷장]에서 아슬란은 알고 있었지만, 하얀 마녀는 알지 못했던 그 '더 심오한 마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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