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은 국군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군대 (육해·공군)의 창설을 기념하고 국군의 위용과 발전을 알리기 위한 기념일입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낙동강까지 밀려났던 우리 국군은 간신히 다시 38선을 돌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전쟁에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의의를 기리기 위해 38선을 돌파한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1. 국군창설 및 병역 의무
우리나라 국군은 1948년 8월 15일에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식으로 조직되었습니다. 1953년 분단 이후로 북한의 재도발을 막고 국민의 안전과 나라를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국군은 본인의 지원에 의한 '모병제'였으나 한국 전쟁이 일어난 바로 다음 해인 1951년부터 '징병제(국가가 국민 모두에게 강제적으로 병역의 의무를 지우는 의무 병역 제도)'를 원칙으로 한 모병제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사병은 징병제지만 부사관, 장교 등 간부는 모병제를 따르고 있고, 우리나라 만 18세 이상의 남성은 누구나 병역판정검사를 통해 약 1년 6개월간 군인으로서 복무해야 하는 병역의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복무기간은 2020년 6월 2일 이후 입대 시기를 기준으로 육군은 1년 6개월, 해군은 1년 8개월, 해병은 1년 6개월, 공군은 1년 10개월입니다.
2. 군사제도의 역사
군사 제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세종대왕 때 북쪽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4군 6진을 세운 일이나 왜구의 소굴이었던 쓰시마섬(대마도)을 정벌했던 것을 보면 조선 시대의 군대는 대단히 조직적이고 강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진족은 만주 지방에서 일어난 민족으로 고려와 조선의 국경을 자주 침범해 우리 민족에게는 늘 골치 아픈 존재였습니다. 세종대왕은 김종서와 최윤덕 장군으로 하여금 여진족을 물리치게 했는데요. 이후 압록강 상류 지역에는 4군을, 두만강 유역에는 6진을 세워 국경선을 안전하게 확보했습니다. 또한 이종무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은 쓰시마섬을 정벌해 조선의 남해안과 서해안에 침범해 약탈을 일삼는 왜구들을 소탕했습니다. 그 후 조선은 오랫동안 평화의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3. 군대가 없던 시기
그런데 우리나라에 군대가 없던 시기도 있었답니다. 바로 대한제국 때의 일인데요, 경술년(1910년)에 나라를 팔아먹은 여덟 명의 매국노라고 하여 경술국적이라고 불리는 사람 중 한 명인 이병무는 이완용 내각이 성립하면서 군부대신(조선 후기 군부의 수장)에 임명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대한제국의 군부 대신임에도 조선 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의 지시를 받은 일본 헌병 70여 명을 궁궐에 진입시켜 고종황제를 위협하고 퇴위시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고는 1907년 7월에 순종(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을 압박해 결국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시켰고, 그 과정에서 해산에 반발하는 자신의 부하들을 죽이는 악랄한 짓까지 저질렀습니다.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체된 후 이병무는 일본의 친위부 장관이 되어 군대 해산에 저항하는 군인과 의병들을 진압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에 편입되어 나라를 팔아먹은 공로로 일제로부터 훈장을 가장 많이 받은 친일파로 이름을 날렸습니다.